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7 사건 (문단 편집) === 2월 4일 총파업 === 군벌들의 노동운동 탄압에 분노한 각 분회 대표들은 2월 1일 심야, 경한철도 총공회 집행위원회 비밀회의를 열어 총파업을 결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2월 4일부터 경한선 전 구간에 걸쳐 총파업을 단행하고 편의상 총공회를 강안으로 이전한다"는 결정을 발표하고 총파업을 선포, 전국 노동단체에 공동투쟁을 호소했다. 노동자들은 2월 4일 총공회의 명의로 5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 1. 경한철도구장, 군 책임자, 정저우 경찰국장의 파면. * 2. 대회에 끼친 손해의 배상. * 3. 몰수해 간 모든 액자, 기증물 등을 정저우 지방장관이 총공회에 반환할 것, 정저우 분회 사무실을 점령한 군대를 철수시킬 것, 분회의 간판을 반환할 것, 정저우 지방장관은 사죄할 것. * 4. 일요일은 휴일로 하고 휴일임금을 지급할 것. * 5. 구정 때는 일주일 간의 휴가와 임금을 지급할 것. 2월 4일 오전 9시, 강안기계공장 노동자들을 비롯하여 3천명이 운집한 가운데 장신점에서 분회 주최로 3시간 동안 노동자 전체대회가 소집되었고 총공회는 파업명령을 전달했다. 군중이 열렬히 호응하여 파업 노동자들은 2만명으로 불어났으며 강안, 장신점, 정저우 등지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이 실시되어 철도가 마비되었다. 장궈타오, 샹잉, 뤄장룽, 린위난 등도 이 파업에 참여했다. 2월 5일, 직예군벌은 12시간 이내에 직장에 복귀할 것을 요구했지만 노동자들은 "총공회의 명령없이 단독으로 교섭할 수 없다."면서 복귀를 거부했다. 이에 [[차오쿤]]은 장신점에 군대를 파견하고 계엄령을 선포하여 장신점에 군대를 배치해 노동자들과 대치했다. 강안에서는 호북독군 소요남(肖耀南)이 군대를 파견해 파업 주동자 색출을 시도하는 한편, 노동자들을 강제로 끌어내 열차를 다시 운행하려 했다. 이에 총공회는 규찰대를 모집해 군벌에게 저항했고 삽시간에 2천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군대와 싸웠다. 2월 6일, 우한의 여러 노동조합이 대표 수백명을 강안에 파견하여 위문대회를 거행했고 수십명의 조합지도자들이 연설을 했다. 마지막으로 경한총공회 비서장이 다음과 같이 답사했다. >"우리들의 이번 대파업은 전체 노동계급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대 관건이다. 우리는 단순히 임금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이날 경봉선, 진포선에서 군벌들이 노동자들을 모집하여 군인들의 감시하는 가운데 열차 운행을 재개했고 파업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정저우에서는 직장 복귀를 요구하는 군벌들에게 노동자들이 "총공회의 명령만이 열차를 운행할 수 있다."며 교섭을 거부하였다. 이에 베이징에 주재한 외국 공사관들은 노동자들이 각 도시 조계와 영사관에까지 진출하여 외국인들을 위협하는 점에 불안을 느끼고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북양정부에 엄중경고하며 무력으로 파업을 진압시킬 것을 종용했다. 한커우의 영국 영사관에서는 소요남이 강안공회대표들과 대표회의를 개최, 파업 분쇄에 대해 논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